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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들 사이의 기적 리뷰 본문

B/Review

영화, 그들 사이의 기적 리뷰

생름 2022. 7. 20. 00:51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지난 일요일에 다녀왔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예매한 영화는 '그들 사이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4시 상영이었다. 그 전에 주완이가 더빙한 블랙아이스 VR을 체험할 계획이었는데, 예매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쇼시에만 허용이 된단다. 예약자가 나타나기까지 15분의 유휴시간이 사이사이 주어졌지만 (1) VR 기기와 (2) 해드셋과 (3) 모션센서를 시험삼아 감히 착용해보기가 쑥스러웠다. 

보그단 조지 아페트리 감독은 루마니아 태생의 미국인이다. 원제는 기적(miracle)이었고, 어떤 내용인지 따로 찾아보거나 제목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헝가리에서 만든 '사울의 아들'과 비슷한 카메라 기법이 쓰였다. 주인공 얼굴이 화면에서 50%이상 차지하고, 얕은 파사계 심도를 사용하여 주변 상황과 다른 등장인물은 대게 뿌옇게 나온다. 이 영화에서도 비슷하다. 전체 내용의 절반은 한 여성의 표정을 중심으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 여성에게 일어난 일을 좇는 한 남성의 표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한 대상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며 주변의 대화로 유추하는 방식이 많았다. 그래서 화면 전환이 적고 롱테이크 방식이 많았는데, 감독이 기용한 루마니아 배우들이 모두 연극배우 출신이어서 기법이 어렵지 않고 자연스러웠단다. 루마니아에는 영화배우들이 많지 않고 기본적으로 연극 커리어가 있다는 감독의 설명으로 유추할 때 문화적으로 영화가 부흥하는 산업은 아닌 듯 하다. 

영화의 초반부는 어느 견습 수녀가 시내 병원에 몰래 다녀오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근심스럽고 방어적인 여자의 얼굴 뒤로 루마니아의 아름다운 배경이 보이고, 사회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걱정하는 인물들의 대화가 계속해서 들린다. 여자가 병원을 방문한 이유는 아내가 있는 형사의 아이를 지우기 위함이었다. 수녀복장으로 병원을 방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는 택시기사에게 여정 도중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한다. 마찬가지로 수녀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수녀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다른 택시 기사에게 같은 부탁을 한다. 두번째 기사는 첫번째보다 친절하고 유쾌했으나 옷을 갈아입는 틈을 빌미로 여자를 폭행하고 강간한다. 

이야기의 후반부터는 예민하고 성미가 급해보이는 형사가 등장한다. 그는 수도원과 병원을 오가며 여자가 피해를 입게 된 경위를 조사한다. 사실을 털어놓는 대신 기도로서 돕겠다는 수녀들의 이야기에 남자는 말한다. "신은 필요없어요. 우리는 도움이 필요해요."  남자가 주변 인물들을 답답해하며 급하게 다그치는 이유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피의자로 의심되는 인물이 곧 풀려나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내연녀가 아니었다면 가짜 증거를 만들거나 사람들을 다그치진 않았을  것이다. 남자가 참을성이 없고 거침없어서 영화 말미에 그 두 번째 기사가 피의자로 재등장하기 전까진 남자가 붙잡은게 엉뚱한 사람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야 영화 제목이 말하는 기적이 보일까. 여자에게 개선될 상황이라는게 있을까. 

영화가 끝나자마자 영화 속 기적이 어느 부분이었는지 주완이와 토론했다. 남자가 물가에서 손을 씻고, 범인의 자백을 받아낸 뒤 범인을 죽인 순간? 범인을 죽인 것이 남자의 상상이었는지 죽이기 전으로의 타임워프를 한 것인지 혼동스럽지만, 타임워프라면 죽어가는 여자가 선사한 기회일까? 설마 범인을 죽일 생각이던 남자에게 여자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은 기묘한 타이밍이 구원과 기적일 수도 있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명백히 비극적인 상황을 기대치를 낮추어 다시 분석하고 사이사이 혹시 내가 놓친 기적이 있는지 생각했다.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보며 영화 제목을 떠올리며 기적이 오기를 기다리겠지만, 결코 우리가 마주한 삶에 기적은 없고 그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관객이 기대한 저마다의 기적이 맥거핀인 셈이다. 신성한 기적은 막연하기만 할뿐 결코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스로 개척할 수도 없는 상황들. 영화를 보며 여자의 일생이나 테스가 떠올랐다. 아이를 지우려 시내에 나갔다 숲에서 죽어가는 여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세상에서 그에게 따듯한 존재란 어디에도 없고, 기적은 그들 사이에 있을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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