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 1 본문
2020년. 아직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의 상상속 정원이던 고흥을 다녀왔다.
페이스북에서 자전거여행을 하던 어느 페친님이 고흥이 제일 아름답단다. 꼭 가볼만하단다. 찾아보니 여수와 강진 사이에 있다. 마침 서울사람에게는 미스터리한 다도해상국립공원도 부분 끼고 있다. 직접적인 사진보단 말과 글이 장소를 더 신비롭게 해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표현한 누군가의 감회를 좇아, 한동안 고흥에 가고 싶었다.
5월 1일 저녁부터 5월 3일 저녁까지 여수 > 고흥(나로도) > 고흥 > 순천 여정으로 뚜벅이 여행을 했다.
새벽에 무궁화호를 타고 여수에 도착했다. 베개와 안대와 마스크를 챙기길 잘했다.
5월 2일은 외할아버지를 기리는 날이라 엄마가 닭탕수육을 많이 하셨다. 음. 집에서 제사나 조상님을 기리는 날에는 엄마가 잘하는 음식을 많이 해주신다.
그래서 닭탕수육을 많이 챙겨왔다. 칭따오와 같이먹었다.
가족들은 새벽에 군산으로 출발했고, 나는 오동도를 바라보며 혜정이와 일출을 기다렸다.
흐려서 해는 보지 못했다. 얼마 뒤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로 가는 택시에서 구름 위로 떠오른 큰 해를 얼핏 보았다.
아침 7시 30분 거문도로 떠나는 배를 타기전에 시간이 조금 있었다. 터미널 근처에서 게장 백반을 먹었다.
거문도에서 다시 배를 타면, 멋지게 생긴 백도를 유람선을 타고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단다. 우리는 미처 거문도까지 갈 관심은 없고, 소박하게 나로도에서 내릴 거다.
나로도에 도착했다.
윗마을 민박집에 거의 도착했다..!
혜정이가 얼음을 정말 먹고 싶어했다. 외나로항 근처에 있던 씨유를 지나쳐 다음 마켓들은 제대로 된 얼음을 가지고 있는 곳이 없었다. 당최 나도 그닥 얼음에 관심이 없어서 마켓 주인들과 피차 같은 마음이었다.
송귀엽 아주머니네 마트에도 얼음이 없다. 집 냉장고에 있던 개성있는 얼음을 마루바닥에 탁탁 털어주셨다. 성의를 두고 나올수가 없어서 손에 쥐고 나왔지.
우리가 있던 길은 지루했고 멀리 나루고등학교 풍경도 공포영화같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본 나루고등학교 쪽의 마을길은 생각과 달리 아기자기하고 빗길에 다니는 진흙길도 꽤 안락했다.
너무 피곤했다.누워서 방탕하게 보내는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다. 회사생활에 찌들어 오랜만에 시간부자가 된 것 같았다.
낮잠자고 일어나 다도해회관에서 회를 먹었다. 사람이 많았다. 아마도 여기도 오랜만에 북적이는 것 같았다.
쑥섬에 가려고 했는데 아침 8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사람이 많았고 배편은 매진이란다. 아침에 예약하고 가라는 권유 말씀이 인제야 이해가 간다.
빠른 포기 후 회를 먹었다.
나로도에는 봉래산이 있다. 여기도 다도해상국립공원의 일부다. 봉래섬 정상이나 가면 되려나 생각하고 있는데 현실적인 혜정이는 편백숲을 찾아주었다. 지도에서 본 편백숲과 봉래산 정상은 멀지 않았다. 정상까지 여기서 걸어서 3시간 반. 울릉도 성인봉도 4시간이나 걸어서 올라갔는데 3시간 30분이면 껌이네 생각했다. 가는 길에 혹시나 힘들면 편백숲까지만 가면 되겠다~ 생각했었지.
차로 가지 않고 국도를 걸어가는 것은 나름 여유있고 재미있었다. 원할 때마다 풍경을 멈추어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장단이 다 있는거다. 초반에 여유롭게 가다 서다 사진찍다를 반복하다 어느덧 한시간반이 지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사장과 비를 만나니.
바람이 거친 섬들엔 돌담이 많은 것 같다. 나름 정교하고, 손으로 제자리를 찾아 올린 것 같은 모습들이다.
외나로도 최남쪽을 가는 길. 섬이 손가락들처럼 겹겹이로 놓여 중경과 원경이 함께 조화롭다. 이때는 아직 괜찮았다.
여기가 제일 고비였다. 혜정이는 돌아가고 싶어했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직 돌아갈만한 여유와 만끽이 아직 없었던 것 같은데,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적어도 편백숲 초입 주차장까지는 가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화장실은 있겠지 암. 다른 곳에서 앉았다 와도 되겠지만, 겸사겸사 목적지를 화장실이 있는 편백 숲으로 정했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걸음을 옮겨 편백숲 주차장에 도착했다. 도로가 경사가 높고, 숲길과 정상가는 길은 능선을 타고 오르는 쉬운 코스라 짐작된다. 대충 편백나무는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로 하고, 이미 정상에 도착한 것 같은 기분에 만족스러웠다.
이것이 편백나무다. 일본식 목가구로 유명한 히노키라는 이름도 있다.
잎파리는 이렇게 생겼다. 이 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닮았다. 잣나무와 소나무도 구분을 못하는 능력치로는 한계가 있다.
히치하이킹을 하려했으나 실패했다. 오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공사길을 피해서 돌아와서 그런가. 이미 아는 길이라 그런가. 길이 사랑스러워야.. 덜 지루하구나.
오는 길에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를 가지고 내기를 했다.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
3일 오전에도 일찍 일어나고 싶었다. 민박집 앞 바다는 내일 둘러보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증말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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